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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yoDream

사랑, 그리고 다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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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를 키우는 일은 축복입니다. 동시에 고단한 수행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은 천사 같다가도, 어느 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게 행동해서 부모의 속을 뒤집어 놓습니다.
‘도대체 누굴 닮아서 저럴까’ 싶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옵니다. 욱하는 마음에 큰소리가 앞서고, 이내 돌아서서 후회하는 것이 우리 부모들의 일상입니다.

스웨덴의 유명한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일화입니다.
(그녀를 기념한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 문학상’은 아동문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립니다. 그녀의 작품인 ‘말괄량이 삐삐’를 우리 모두 좋아합니다.)
자녀로 고민하는 부모들이 그녀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아이에게 문제가 너무 많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린드그렌의 대답은 간결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십시오(Give the children Love).”
얼마 후 그 부모들이 다시 찾아왔습니다. 사랑만으로는 안 되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습니다. 그러자 작가는 말했습니다.
“더 많은 사랑을 주십시오(More Love).”
시간이 얼마 흐른 후에, 또다시 부모들이 찾아와 절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이건 사랑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린드그렌의 마지막 대답은 이것이었습니다.
“훨씬 더 많은 사랑을 주십시오(Even more Love).”
그녀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끝까지 아이를 사랑해주면, 그 사랑으로 아이들은 반드시 온전한 어른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부모의 사랑이 세상의 전부입니다.
그 전부가 흔들릴 때 아이들의 삶도 흔들립니다. 부모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아이의 거친 행동은, 사실 "나를 좀 더 사랑해달라"는 내면의 신호일지 모릅니다.
물론 참기 어렵습니다. 인내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독교의 사랑은 항상 한계 너머에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끝까지 참아주시고,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기독교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온전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받다 보니 조금씩 온전해져 갈 뿐입니다.
내 생각과 기대를 잠시 내려놓읍시다. 아이를 내 기준에 맞추려 조급해하지 맙시다. 조금 더 참고, 조금 더 기다려 줍시다. 사랑이 이깁니다. 결국 사랑이 아이들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시면 사랑하는 자녀들을 꼬옥 안고서 이 말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네가 어떤 모습이든, 엄마 아빠는 너를 끝까지 사랑한단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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