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흔히 학교에서 한글은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힘을 합쳐 만든 왕실 연구의 결과물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최근의 역사적 연구들은 이 오랜 상식을 정면으로 뒤집어 놓았습니다.
훈민정음은 다른 누구도 아닌 세종대왕, 그분의 철저한 독창적 연구와 끈기로 빚어낸 순수한 개인 창작물이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백성을 사랑한 학자들로 기억하던 집현전의 엘리트 관료들은 철저한 사대주의에 갇혀 한글 창제를 가장 격렬하게 반대했던 주역들이었습니다.
당시 집현전 직제학이었던 최만리를 필두로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등 중견 및 소장 학자들은 연명으로 상소문을 올렸는데, 이를 ‘언문조어논고(諺文造語論攷)’라고 합니다.
그들은 중국과 다른 문자를 만드는 것은 대국을 섬기는 사대정신에 어긋나며 스스로 오랑캐가 되는 길이라는 점, 백성이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은 문자를 몰라서가 아니라 관리의 자질 문제라는 점 등 여섯 가지 이유를 들며 훈민정음 배포를 가로막아 섰습니다.
백성의 실질적인 유익보다 눈치 보아야 할 중국의 심기를 더 민감하게 살폈던 관료들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유감을 남깁니다.
그들의 반대로 인해 세계 언어학자들이 감탄하는 가장 과학적인 문자, ‘한글’이 하마터면 빛을 보지 못할 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거센 반대와 저항의 역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또 다른 진리가 보입니다.
나와 다른 의견을 내세우며 앞길을 막아서는 반대파들이 당장에는 밉고 원망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조직이나 공동체에서도 쓴소리를 도맡아 하는 이른바 ‘레드팀(Red Team)’의 존재는 마주하기 껄끄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듯 꼼꼼하고 완강하게 반대하는 사람들이 존재했기에, 세종대왕은 훈민정음을 더욱 완벽하고 흠잡을 데 없는 체계로 다듬고 철저하게 준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반대를 극복하기 위해 밤낮으로 지혜를 짜내며 열심을 내다보니, 결국에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위대한 유산이 완성된 셈입니다.
이처럼 우리 삶에 찾아오는 반대 의견과 반대론자들은 우리의 논리를 정교하게 만들고, 우리의 걸음을 성찰하게 하며, 마침내 우리를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발전시키는 고마운 디딤돌이 되기도 합니다.
성경 속에서도 하나님은 대적들의 방해와 시련을 통해 오히려 당신의 백성들을 정금처럼 단련하시는 기회로 사용하셨습니다.
일본의 동경에서 가정을 일구고 공동체를 섬기다 보면, 나와 결이 다른 목소리를 만나 마음이 상하고 움츠러들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생각과 다른 의견을 마주할 때, 나를 무너뜨리려는 적대감이 아니라 나를 더 온전하게 다듬어 가시는 하나님의 섭리로 바라보면 어떨까요?
나를 반대하는 이들을 부드럽고 넉넉한 마음으로 대할 때, 그들은 비로소 나를 성장시키는 고마운 존재로 재발견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도 넓은 마음으로 사람을 품으며 승리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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